분라쿠에의 초대

역사

전성기

인형의 장치나 희곡의 구성이 크게 진화됩니다

다케모토좌와 도요타케좌의 경합

The lively, bustling areas of Takemoto-za and Toyotake-za
"Chikuho Koji"
(Waseda University The Tsubouchi Memorial Theatre Museum collection)

『 소네자키 숲의 정사(曽根崎心中) 』의 초연으로 다케모토좌(竹本座)가 북적였던 1703년. 기다유(義太夫)의 제자로 고음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큰 인기를 모았던 도요타케 와카타유(豊竹若太夫)가 독립하여 같은 도톤보리에 도요타케좌(豊竹座)를 엽니다. 와카타유는 인기 있는 인형사를 다케모토좌(竹本座)에서 스카웃하거나 유능한 작가인 키노카이온(紀海音)을 전속 작가로 발탁하는 등의 경영 수완도 발휘하여 도요타케좌(豊竹座)는 다케모토좌(竹本座)에 맞서는 경쟁 세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두 극단이 다양한 아이디어로 서로 경쟁을 하게 되면서 닌교죠루리(人形浄瑠璃)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한 사람에서 세 사람으로

"Ashiya Doman Ouchi Kagami" Playbill
from"Kamigata No.121" (National Diet Library collection)

이 융성기에 인형도 큰 변화를 거듭합니다. 눈이나 입, 손가락 등이 섬세하게 움직이게 되고 더욱 더 인간에 가까운 표현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또 옷자락이 아닌 등으로 손을 넣는 구조로 바뀌고 인형에 다리도 붙게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움직이던 인형을 셋이서 분담해서 움직이는 것이 기본이 되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인형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1734년, 다케모토좌에서 『아시야도만오우치카가미(芦屋道満大内鑑)』를 상연할 때 고안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편화와 3대 명작

인기가 높아지면서 죠루리의 스토리는 점점 더 복잡하고 장대한 것으로 변해갑니다. 각 단을 더 극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서 복수의 작가가 분담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합작 방식이 많아졌습니다. 3대 명작으로 불리는 『스가와라덴쥬테나라이카가미(菅原伝授手習鑑)』, 『요시츠네센본자쿠라(義経千本桜)』, 『가나데혼 추신구라(仮名手本忠臣蔵)』는 다케모토좌(竹本座)의 나미키 센류(並木千柳), 미요시 쇼라쿠(三好松洛), 다케다 이즈모(竹田小出雲), 이 세 사람의 합작으로 태어난 작품들입니다.